도상의 마네킹
정계원
내 몸속 회로로 전자피가 흐르므로 내겐 생모가 없어 본적지도 기계소리가 난무하는 공단이야 저녁이 없는 사주로 태어나, 오직 세상이 입력한 대로 나는 둥근 허무를 상하로 흔들 뿐, 어둠이 점령한 단칸방 하나 없이 길 위에서 살아
한 접시의 영혼도, 퇴근길에 소주 한잔할 아홉 시도 없어 그토록 내가 원하는 것은 다리가 짧은 꺼먹돼지 일지라도 식탁에 마주 앉아 정수리를 맞대보는 일이야 태양이 살갗을 태워 하지만 CPU의 명령에 따라 정신의 날을 세워야 해
길 위에서 내 이름이 지워지는 저녁, 바다를 건너온 승용차들의 도끼 눈빛들이 탄두처럼 날아와 왼쪽 가슴을 관통해 그때 새들도 물병 별자리를 안고 둥지로 회향을 서둘러 나의 전신이 방전이야 산사의 범종소리가 내 슬픔을 일으켜
2017년 『현대시』, 7월호 발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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