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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원 시인/ 부엉새와 초허

강릉군 사월면 노동리 71번지에 어둠이 짙게 내린 저녁 다섯 살 된 한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부엉새 울음소리가 귓불에 가득 고이는 밤, 덕실리에 품앗이 갔던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등잔 앞에 앉아 있는 아이의 친구는 적막뿐이고, 등잔불은 문밖의 짐승 우는 소리에 흔들리고 있다 풀벌레소리가 섬돌 위에 하얗게 쌓인다 고요 한 겹이 아이의 무릎 위에 더 쌓여도 아이는 기다림에 흔들리지 않는다 달빛에 비친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감나무, 그 나뭇가지에서 아이의 불안을 키우는 부엉새, 먼 길 치맛자락 끄는 소리, 등에 달빛을 가득 지고 오는 어머니, 문종이에 싸인 약과를 내준다 아이가 달려드는 품이 봄날 같아서 눈물이 저녁강처럼 흐른다 밤이 깊어도 부엉새 울음소리가 자장가로 들리는 엄마의 품..

김학주 시인/ 메밀꽃밥에 동이

메밀꽃밭에 동이 김학주 달빛이 쏟아지는 메밀밭에 흰 소금이 뿌려져 있다 동이가 없는 봉평 마을, 허 생원이 당나귀에 동이를 태우고 달빛을 따라가던 길을 나도 걸어가 본다 호박엿을 파는 품바가 신명 나게 난장판을 벌이는 봉평장터,황톳길을 넘어오던 여인들의 치맛자락 끄는 소리에 장단 맞춰 낮달도 취해 있다 물레방아가 허무를 안고 돌아가는 칠흑의 밤, 긴 머리칼을 뒤따라온 한 사내가 어깨를 웅크리고 방앗간으로 스며든다 동이의 출생 역사를 두 사람이 물레방앗간 황토 바닥에 새기고 있다 어디선가 발정하는 당나귀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지나가던 달빛 그림자도 강 건너 장터 국밥집 저녁연기와 애무를 한다 하현달은 배를 깔고 서산을 넘고흰 소금꽃들은 동이의 발자국을 따라 지천으로 피고 있다봉평장터 곳곳에 스며..

내가 읽은 시 2026.08.29

김학주 시인/기억 속에 이중주 기억

기억 속에 이중주 기억 김학주 파도가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밤바다를 뛰쳐나온다 오늘도 기억하나 손에 쥐고 먼저 떠나온 바다를 끌어당긴다 모랫벌은 장골의 해풍에 자리 를 내주었고, 고독을 밟고 간 아버지의 바다정류장을 떠 올린다 간밤에 흔들리던 빈 술병이 나귕굴어지고 소금꽃이 된 아버지는 피할 수 없는 제 그림자 를 바다로 내몰았고 파도는 그 그림자를 안고 울었다 달맞이꽃도 따라 울었다 어둠에 젖은 해당화, 폐허의 목숨처럼 방파제로 쓰러지고 아우성치던 내 발자국도 등대가 없는 밤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한낮, 해변에 묻어 두고 온 아버지의 기억, 그것은 내 영혼의 전신이다 파도는 밤새도록 아버지의 기억을 물새알처럼 뭍으로 건져내고 있다 -출..

내가 읽은 시 202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