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의 시세계
시뮬라크르와 부처곷, 풍자와 초월 사이의 길항
오형엽(문학평론가 ‧ 고려대학교 교수)
정계원의 두 번째 시집 『밀랍 물고기』는 도시 생태학과 종교적 지향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면서 요동친다. 혹은 양자를 두 극으로 삼아 그 사이에서 다양한 시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진자 운동 혹은 시적 시펙트럼은 큰 틀에서 도시 생태학에서 종교적 지향으로 전개되는 시적 방향성도 함축하고 있다. 이번 시집의 전체적 얼개를 이루는 제1부에서 제4부에 이르는 구성을 살펴보면, 다소의 혼재 적 양상 속에서 전자로부터 후자로 이동하는 시적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정계원 시의 중심 모티프를 추적하면서 시적 기법 및 주제의 흐름을 살펴보기로 하자.
정계원의 이번 시집은 제1부 ‘너에게로 이모티콘을 보내고 있어’를 중심으로 ‘시뮬라크르’의 모티프를 중심으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화를 풍자하면서 도시의 생태학을 그려낸다. 중심 모티프를 이루는‘시뮬라크르’는 기호 혹은 허상이 삶의 중심을 지배하면서 실재를 은폐하는 전자문명 시대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내 몸속 회로로 전자피가 흐르므로 내겐 생모가 없어 본적지도 기계소리가 난무하는 공단이야 저녁 이 없는 사주로 태어나, 오직 세상이 입력한 대로 나는 둥근 허무를 상하로 흔들 뿐, 어둠이 점령한 단칸방 하나 없이 길 위에서 살아
한 접시의 영혼도, 퇴근길에 소주 한잔할 아홉 시도 없어 그토록 내가 원하는 것은 다리가 짧은 꺼먹돼지 일지라도 식탁에 마주 앉아 정수리를 맞대보는 일이야 태양이 살갗을 태워 하지만 CPU의 명령에 따라 정신의 날을 세워야 해
길 위에서 내 이름이 지워지는 저녁, 바다를 건너온 승용차들의 도끼 눈빛들이 탄두처럼 날아와 왼쪽가슴을 관통해 그때 새들도 물병 별자리를 안고 둥지로 회향을 서둘러 나의 전신이 방전이야 산사의 범종소리가 내 슬픔을 일으켜
-「도상의 마네킹」 전문
정계원의 시에서 시뮬라크르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마네킹”이 등장한다. “마네킹”은 “몸속 회로”의 “전자피”,“기계소리가 난무하는 공단”, “CPU의 명령”등에 나타나듯 도시의 기계성 및 전자문명의 모듈module에 의해 형성되는 비인간적 삶의 현실을 상징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화자는 “단칸방 하나 없이 길 위에서” “아홉 시도 없”는 삶을 살면서 자신의“이름이 지워지는 저녁”을 맞이한다. 시인은 “마네킹”을 통해 실재가 은폐되거나 자취를 감춘 도시문명의 비인간적 현실을 냉소적 풍자의 기법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의 제목인「도상의 마네킹」에서“도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은 1연과 3연에 나타나는 “길 위에서”라는 표현과 상호 조응하며 해석해야 하는데, 나는 이 표현에 대해 이중적 해석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표면적으로 “도상”은 “저녁이 없는”, “단칸방 하나 없이”, “아홉 시도 없어”,“내 이름이 지워지는”등의 부정어와 연결되면서 정착 없는 방황, 실재 없는 허상, 존재 이유를 상실한 허무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도상”의 의미는“마네킹”이 가지는 시뮬라크르의 상징성과 조응하면서 시적 풍자를 강화시킨다. 그런데 1연에서 2연을 거쳐 3연으로 진행되는 시적 흐름을 음미하면, “도상”은 화자가 변신하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시적 지향성을 견인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1연에서 주체의“본적지”는“기계소리가 난무하는 공단”이므로 “저녁이 없는 사주로 태어나”지만, “길 위에서 살아”감으로써 2연에서 “식탁에 마주 앉아 정수리를 맞대보는 일”을 “원”할 수 있고, 3연에 이르러“전신이 방전”인 상태에서“산사의 범종소리가”“슬픔을 일으”키는 경험을 맞이할 수 있다. 즉 내면적으로 “도상”은 “마네킹”이 가지는 시뮬라크르의 상징성과 대응하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시적 지향성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시적 풍자가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길로 전이되는 계기를 동반한다.
인용한 시가 보여주는 시적 지향성의 의미와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길은“둥지로 회향”과 “산사의 범종소리”라는 두 이미지로 수렴되는데, 이것은 ‘과거로의 회귀’와 ‘불교적 정화 및 승화’라는 시적 주제와 긴밀히 결부되는 듯이 보인다. 결국 이시는“마네킹”이라는 시뮬라크르의 모티프를 통해 도시문명의 비인간적 현실을 묘사하는 풍자의 기법에서 출발하지만, “도상”혹은 “길 위에서”라는 이중적 의미 장치를 경유하여 과거로 회귀하거나 불교적 정화 및 승화를 추구하는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따라서「도상의 마네킹」은 앞에서 언급한 바 정계원의 이번 시집이 큰 틀에서 도시 생태학에서 종교적 지향으로 전개되는 시적 방향성을 함축한다는 점을 하나의 작품으로 응축해 보여주는 모나드라고 볼 수 있다. 정계원 시의 지향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서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B가 하강한다 슬픔의 B여자,
등 뒤의 A거울 속에 출생의 비밀이 있고,
C 거울엔 이마 안쪽 오후가 하강한다
내 유년의 울음이 굴러다니고 개미들의 허드렛 울음소리로 살아온 날들이 보인다 나의 빈 방을 태우던 불면의 여름밤, 신목처럼 떨던 내 목울대의 울음이 붉다 한 여자는 거울 속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없은 오아시스였으므 오직 신전의 경전 속을 걸었다
지금은 빈곤에 떨던 연꽃에서 벗어나 산다 한 조각의 아우성으로 사주를 써 내려간다 겨울이 체포했던 궁핍의 나목이었다가 꽁지가 짧아 추락하는 새가 되는 날도 있었으나 B 거울 안에서 생의 스카프를 휘날리며, 불혹의 강가에서 발목을 적시고 있다
C 거울 속, 수평선에 걸터앉은 폐선이 홀로 출렁거리겠다 석양빛이 나의 목숨을 건조시킬수록 몸속엔 독도가 혼자 살겠다 허공에 빛바랜 영혼으로 웅크리고 앉아 도시에 던져 놓았던 어망을 걷어 올리며, 한 여자가 C 속에서 두꺼운 수의를 짜고 있겠다
시간이 하강한다 한 여자가 C 거울 속에서 사라진다
세상은 다시 어두워지고
흰 들국화들이 머리를 풀고 산기슭으로 오르고 있다
-「엘리버이터와 C 거울」 전문
이 시의 중심 이미지는 “엘리베이터”와“거울”이다. 전자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화를 풍자하는 도시의 생태학과 연관된다면, 후자는 변주되는 기억을 반영하면서 시뮬라크르의 모티프에 시간성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1연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슬픔의 B 여자”가 “하강”하는 상황에서“등 뒤의 A 거울”과 “C 거울”에 비치는 존재의 이면을 제시한다. “A 거울”은 그 “속에 출생의 비밀이 이”는 과거의 장면을 반영하고, “C 거울”은 “이마 안쪽 오후가 하강”하는 미래의 장면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후 시의 전개는 2연에서 “A 거울”에 비치는 과거의 상황들이 제시되고, 3연에서 “B 거울”에 비치는 현재의 상황들이 제시되며, 4연에서 “C 거울”에 비치는 미래의 상황들이 제시된다. “A 거울”에는 “유년의 울움”, “불면의 여름밤”, “해소할 수 없는” “갈증”등의 불행한 과거의 기억들이 투영되고, “B 거울”에는 “빈곤”에서 “벗어나”“생의 스카프를 휘날리며, 불혹의 강가에서 발목을 적시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투영되며, “C 거울”에는“홀로 출렁거리겠”는 “폐선”, “혼자 살겠”는 “독도”, “수의를 짜고 있겠”는 “한 여자” 등의 고독한 미래의 예감이 투영된다.
여기서 두 가지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도시의 생태학에서 과거로 회귀하거나 종교적 지향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도상의 마네킹」에서“도상”혹은“길 위에서”라는 공간성의 이중적 의미 장치가 견인했다면, 인용한 시에서는 “거울”이 반영하는 시간성의 의미 장치가 견인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도상” 혹은 “길 위에서”라는 의미 장치가 표면적으로 시뮬라크르의 상징성과 조응하면서 시적 풍자를 강화하지만, 내면적으로 그것과 대응하며 극복하기 위한 시적 지향성을 내포하는 이중성을 가진다면, “거울”은 과거 및 현재를 투영하는 동시에 미래를 예감하면서‘과거로의 회귀’와 ‘현재의 반영’ 및 ‘미래적 예감’을 파노라마적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시상 전개의 측면에서「도상의 마네킹」이 현실에 대한 냉소와 환멸에서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계기로 전이되는 반면, 인용한 시는 불우와 궁핍, 우울과 고독, 폐허와 죽음 등의 비극적 세계인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면서 시적 출발과 경과 및 지향을 하나로 관통한다. 이러한 사실은 5연에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 전개를 “시간이 하강한다”, “한 여자가 C 거울 속에서 사라진다” 등으로 표현하는 부분에서도 확인되고, “흰 들국화들이 머리를 풀고 산기슭으로 오르고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서도 확인된다.
둘째는“거울”이 반영하는 과거, 현재, 미래 등의 기억의 장면에서 시적 주체로서 화자인“나”와“한 여자”가 혼재하거나 공존한다는 점이다. 도시의 생태학이 가지는 시뮬라크르의 모티프에 시간성을 도입하여‘과거로의 회귀’와 ‘현재의 반영’ 및 ‘미래적 예감’을 파노라마적으로 제시할 때 주체를 1인칭과 3인칭으로 분열시켜서 해체하는 과정을 경유하면서 재통합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따라서“거울”은 시간성을 도입하는 의미 장치인 동시에 주체의 분열 및 해체를 경유하는 재통합의 매개체이기도 하다.시집의 제2부 ‘잘 빚어진 항아리’에 수록된 시들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화를 풍자하는 도시의 생태학을 유지하면서 자연의 이치나 섭리에 의거하여 예정된 조화를 묘사하는 상상력의 편린을 보여준다. 전자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한탕주의보」 연작시라면, 후자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비닐하우스의 딸기」 연작시 및 「잘 빚어진 항아리」이다.
밤새도록 빙고 게임기가 돌아간다 사람들이
돌아간다
빈 주머니가 튕겨 나온다
세상이 온통 아우성의 시대다
거대한 태평양 한 가운데에 부초처럼 떠 있는
플라스틱 빈 병들,
욕망을 비우고 살아 있다
새들의 위장 속엔 자본의 얼굴이 가득하다
꽃들의 귓밥에서 폐수가 흘러내린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마른기침을 하는 허공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겨울의 입술이 파릇한 계절
고래 등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꽃이 피고
바다는 물개를 잃은 지 오래다, 하여
-「한탕주의보 ‧ 1-카지노」 부분
부제목이‘카지노’,‘경마’,‘복권’,등으로 제시되는 「한탕주의보」 연작시는 ‘도박’ 모티프를 통해 “자본”에 대한“욕망”을 중심으로 추동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화를 풍자한다. 자본주의 도시문명의 환등상을 대표하는‘도박’은 도시의 생태학을 구성하는 중심 모티프로 작용하면서“자본”에 대한“욕망”을 환경오염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1연에서“빙고 게임기가 돌아”가는 것은“자본”과 “욕망”의 연쇄가 무한 반복되는 시스템 운동을 상징하고, “빈 주머니가 튕겨 나”오는 것은 이시스템에서 빈자가 산출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2연은“욕망을 비우고 살아 있는”는 “플라스틱 빈 병들”, “자본의 얼굴이 가득”한 “새들의 위장”, “폐수가 흘러내”리는 “꽃들의 귓밥”, “새파랗게 질려 이”는 “허공”등을 연속적으로 제시하면서 도시 생태학이 자연생태의 파괴와 직결된다는 시적 인식을 역설한다. 시인은 그 연장선에서“고래 등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꽃이 피고”“바다는 물개를 잃은 지 오래”라는 표현을 통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직설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한편 부제목이‘홍장’, ‘논개’,‘황진이’, 등으로 제시되는 「비닐하우스의 딸기」 연작시는 “비닐하우스의 딸기”를 절개를 지키는 전통적 여인상과 유비한다. “조선의 미녀 홍장이가 비닐하우수에서/박신을 기다리고 있다”(홍장), “비닐하우스엔 왕조의 여인들이/홍조 핀 얼굴로 3월의 하늘을 열고 있다”(논개), “지금도 송도삼절을 꺾어버린 그녀의 기세는/일필휘지처럼 살아 숨쉬고 있다”(황진이) 등에서 제시되는 “딸기”와 전통적 절개의 여인상 간이 유비는 도시의 생태학이 보여주는 풍자의 강도와 밀도가 상당 부분 약화된 느낌을 준다. 이 점은 정계원 시의 지향성이 도시의 생태학과 시뮬라크르의 상징성에서 출발하여 그것과 대응하면서 극복하기 위해‘과거로의 회귀’와 ‘종교적 정화 및 승화’로 이행하는 도정에서 빚어지는 과도기적 양상으로 짐작된다. 「잘 빚어진 항아리」는 이러한 양상이 시적 주제의 차원과도 연동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꽃이 있어 산이라고 말하고,
물이 있어 강물이라고 말하는 것도
신이 빚어낸 저녁식사가
온다는 뜻이야
PC와
전화기를 잘 버무려 휴대폰을 낳았고
누룩과 쌀은
오랜 기간 동안 숙성되어
막걸리를 빚어냈어
모두 죽을 힘을 다했지
누군가 바람을
태양 아래서 잘 말린 하얀 불을
나에게 주었어
인류의 죄와벌은 그냥 지나칠 것
같아서도
테라사 수녀를 낳았고
신은
죽음이라는 선물로 우리들에게
유한을 남겨 주었어
뽕잎과 누에가 만나
실크 스카프를 짜는 것을 나는
푸르게 보았어
-「잘 빚어진 항아리」 전문
이 시는 인간사가 자연의 이치나 신의 섭리에 의한 과정 및 결과라는 시적 인식을 토대로 전개된다. “꽃이 있어 산이라고 말하고,/물이 있어 강물이라고 말하는 것도/신이 빚어낸 저녁식사/온다는 뜻”이라는 표현은, 자연 현상을 신이 창조한 작품으로 보는 관점을 토대로 인간의 노력과 무관한 예정조화에 의해 빚어지는 결과로 보는 관점까지 포함한다. “PC와/전화기를 잘 버무려 휴대폰을 낳아”다는 표현은 도시 생태학에 대한 냉소적 풍자에서 벗어나 전자문명 시대의 미디어를 진화론적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누룩과 쌀은/오랜 기간 동안 숙성되어/막걸리를 빚어냈”다는 표현은 식생활을 비롯한 인간의 문화를 진보적 낙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누군가 바람을/태양 아래서 잘 말린 하얀 불을/나에게 주었어”라는 문장에서“뽕잎과 누에가 만나/실크 스카프를 짜는 것을 나는/푸르게 보았어”라는 문장에 이르는 표현들도 인간사와 자연 현상 및 우주의 운행이 모두 예정조화에 의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긍정적인 결과를 맺는다는 낙관의 세계인식을 보여준다. 시각이나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계원의 시가 시뮬라크르의 모티프를 통해 도시문명의 비인간적 현실을 묘사하는 풍자의 기법에서 출발하여 과거로 회귀하거나 종교적 정화 및 승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은 우려할 만하다. 긍정과 낙관의 세계인식이나 종교적 사유가 반드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시적 풍자에서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현실과의 접면에서 벗어나 자족적인 관념의 세계로 진입할 때 시적 긴장이 느슨해지는 결과가 빚어지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시집 전체에서 정계원의 시는 한편으로 시적 풍자에서 출발하여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현실과의 접면에 몸을 밀착하고 그 불우와 고통을 냉소와 환멸로 견디면서 시적 풍자를 심화시키는 모습도 보여준다. 전자의 경우에도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성이 긍정과 낙관의 세계인식이나 종교적 사유를 일면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보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양상으로 형상화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게 발견된다.
풍경소리가 둥근 파장을 일으키며 걸어온다
오래된 산사에서,
그녀가 눈을 뜬다
살얼음이 가시지 않은 늪 위에 앉아
합장한 채 웃고 있다
고스도치 가시 같았던 그녀,
반야심경의 행간과 행간 사이를 걸으며
마애반가보살상을 닮아간다
물 위에서 수행한 날들이 오래다
그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녀의 출가가 차갑다는 것,
경전 읽는 소리가 저음으로 내리는 저녁,
펄럭이는 흰 깃발의 고독으로 서 있다
지금, 제의를 끝낸 휴식의 오후
그는 사람이 꽃이 되라고 수행 중이다
꽃이 사람이 되라고 정진 중이다
뒷골목 그림자들에게 달빛 한 접시 건네며
구름은 구름으로
강물은 강물로 돌아갈 것을 기원한다
아니, 두 손으로 합장한 채
백팔번뇌를 씻으려고 세족을 하고 있다
욕망의 외투가 두꺼운 나는
창밖, 분수가 빚어낸 무지개만 쫓고 있다
-「가시연꽃의 기원」전문
이 시는 불교적 상상력을 근간으로 주제의식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지만,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성이 종교적 사유와 단순하게 연결되지 않고 현실과의 접면에서 시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인간사와 자연 현상 및 종교적 제의 사이의 간극을 주시한다. 이 시는 기본적으로 “가시연꽃”과“그녀”를 유비하면서 인간사와 자연 현상 및 종교적 차원의 경계를 복잡다기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현실 직시와 초월적 사유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한다. 1연은 “오래된 산사”에서“걸어”오는 “풍경소리”를 통해 시적 배경을 제시하고, 2연은“가시연꽃”과“그녀”의 유비를 통해 “고슴도치 가시 같았던” 상태에서“차”가운“출가”, “오래”,된 “수행”,“저음”,의 “경전 읽는 소리”등을 거쳐“합장한 채 웃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이르는 과정을 적실하게 표현한다.
“펄럭이는 흰 깃발의 고독”으로 수렴되는 현재의 상태는 3연에서 “사람이 꽃이 되라고 수행 중” 이고 “꽃이 사람이 되라고 정진 중”인 “그”의 모습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융합 혹은 합일의 차원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의“수행”과“정진”은 “구름은 구름으로/강물은 강물로 돌아갈 것을 기원한다”라는 문장으로 재서술되는데, 이 자연의 순리적 행보는 2연의“그녀”가 보여주는 “출가”, “수행”,“경전 읽는 소리”등에서 “합장한 채 웃고 있”는 모습에 이르는 연쇄적 과정을 거쳐서 도달하기 때문에 현실을 단순히 초월하는 시적 해학이나 초월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 자연의 순리는 “두 손으로 합장한 채/백팔번뇌를 씻으려고 세족을 하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바로 연결된다. 2연의 “가시연꽃”과 유비되는 “그녀”와 3연의“그”를 두 주체로 볼지 하나의 주체가 둘로 분열된 양상으로 볼지는 해석이 나뉠 수 있지만, “그녀”의 “출가” 및 “수행”과 “그”의 “수행” 및 “경전”이 연쇄적 구도를 이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 4연에서 “욕망의 외투가 두꺼”워서 “분수가 빚어낸 무지개만 쫓고 이”는 “나”의 모습은 이들과 대비되는 위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시는 “그녀”와“그”의 연쇄적 구도와 이들과“나”의 대비적 구도를 통해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성이 현실과 접면에서 시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인간사와 자연 현상 및 종교적 제의 사이의 간극을 형상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강물이 두 손을 비비며 느리게 걸어가요
무슨 일이 있나 봐요
그의 등뼈에 플라스틱 물병이 꽂혀 있어
탈진했나 봐요
해부학 강의실에서 버린 고양이 등뼈가
강물에 다비식을 치르고 있어요
소금쟁이의 영혼이 붉은 반점으로 난무해요
그래도 물속에 질식한 울트라
생리대, 그 포장의 모델소녀는 웃고 있어요
수중에서 수행 중이던 자갈들이
산 그림자를 외면한 지 오래 되었지요
태양이 안테나를 접고 점심식사 중일 때
물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고기 떼들이 시력을 잃고 있다”고 소리쳐요
균열하는 쉬리 떼들의 영혼 속으로
저녁노을이 붉은 눈시울로 파고들어요
12월, 소나기가 빗살로 내리치고
별빛이 사라진 여울의 열꽃이 무리지어 피어요
산사의 범종소리가 법문을 외워도
스무 살의 강물은 신음소리를 내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젖을 물리지 않아요
산신각이 사라진
부처꽃, 그래도 검은 강물 위에서 웃고 있어요
-「부처꽃이 웃고 있어요」 전문
이 시는 환경오염과 결부되는 도시 생태학의 토대 위에서 불교적 정화 및 승화를 추구하는 시적 방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강물이 두 손을 비비며 느리게 걸어가”는 것은 표면적으로 도시 생태에 대해 자연이 항복한다는 의미를 보여주지만, 내면적으로 강물과 동일시되는 화자를 포함한 인간이 속죄한다는 의미도 함축하는 듯이 보인다. “그의 등뼈에” “꽂혀 있”는 “플라스틱 물병”, “해부학 강의실에서 버린 고양이 등뼈”,“붉은 반점으로 난무”하는 “소금쟁이의 영혼”,“물속에 질식한 울트라/생리대” 등은 자본과 욕망을 중심으로 추동되는 후기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환경오염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비판적인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물고기 떼들이 시력을 잃고 있다”고 “소리”치는“물새”의 “목소리”를 통해 직설적인 고발의 목소리로 나타나기도 하고, “웃고 있”는 “포장의 모델소녀”,“산 그림자를 외면한 지 오래”된 “수중”의“자갈들”, “별빛이 사라진 여울”에 “무리지어 피”어나는“열꽃”등에서 냉소적 풍자의 목소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 시는 현실에 대한 냉소와 환멸을 넘어서 종교적 정화 및 승화를 추구하는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성도 보여준다. “고양이 등뼈가/강물에”“치르고 있”는 “다비식”,“수중에서 수행 중이던 자갈들”,“산사의 범종소리” 등에서 편린을 보여주던 불교적 정화 및 승화의 가능성은 3연에 이르러“산신각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검은 강물 위에서 웃고 있”는 “부처꽃”의 이미지를 통해 전경화된다. “산신각이 사라”졌다는 표현은 전통적 신앙 혹은 과거의 윤리 체계가 훼손되거나 상실되었다는 의미이고 이러한 경과가 현재적 폐허인 환경오염을 낳는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포하지만, 시인은 “그래도 검은 강물 위에서 웃고 있”는 “부처꽃”을 섬광처럼 제시함으로써 종교적 정화 및 승화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정계원의 이번 시집은 도시 생태학과 종교적 지향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다양한 시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한편 큰 틀에서 도시 생태학에서 종교적 지향으로 전개되는 시적 방향성도 함축하고 있다. 그녀의 시가 시뮬라크르의 모티프를 통해 도시문명의 비인간적 현실을 묘사하는 풍자의 기법에서 과거 회귀나 종교적 정화 및 승화를 추구하는 시적 해학 혹은 초월의 방향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현실과의 접면에서 벗어나서 자족적인 관념의 세계로 진입하기보다는 양극의 충돌을 통해 얻어지는 시적 긴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면서 시적 강도를 강화하고 밀도를 높여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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