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번아웃 신드롬*/김승필 시인

정계원 시인 2025. 12. 22. 21:57

  방안의 등불 하나 묵은 어둠을 쓰다듬고 있다

 

  오른손 주먹으로 왼쪽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몇 번 위아래로 툭툭 두드려 본다

 

  -어머니, 한여름 수수깡 바자울에 올린 호박 넝쿨이 깜짝깜짝 놀라면서 뒷걸음질 쳐 애호박 한 덩어리 제때 열지 못한 채 두꺼운 각질을 뚫고 나오려고 해요

 

  한낮의 햇귀를 쐬지 못한 냉기는 마룻바닥에 고여 퉁, 퉁, 돌고 돌아 새벽잠을 차지게 먹는다

 

  다발성 척추 협착증에 그만 허릿골이 저려와 불기 없는 바닥에 드러눕지만 등이 서늘하다

 

  뒷목은 뻣뻣하고 다리도 나뭇등걸처럼 굳어져 통점痛點이 사라진 지 오래

 

  건기에 별의 무리가 깊은 잠에 빠져 어슴푸레 깜박일 때 어둠에서 깨어난 새벽은 숨이 차오르는 병까지 얻어 고양이걸음을 걷는다

 

  

 

 

 

*번아웃 신드롬 :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출처 : 김승필 시인, 시집 옆구리를 수거하다』황금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