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여름/심은섭
벽에 걸린 시계추가 여섯시를 타종할 때까지 매미는 울지 않았다
어떤 이는 매미가 하안거 중이라고 소리쳤고, 누구는 내장이 훤히 보이도록 허물 벗느 중이라고 했다 그런 풍문이 들릴 때마다 저녁식사 중인 자작나무숲들리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수양버들나무들은 실어중에 시달렸다
말복이 지나도 매미는 울지 않았다 곳간은 텅 비어 갔고 노모의 등뼈마저 허였게 드러났다 하혈하던 닭들도 어둠 속에서 야윈 그믐달을 산란했다 등굣길을 잊어버린 아이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로 자꾸 발을 뻗었다
매미울음의 실종을 묵인하는 동사무소로 목마른 접시꽃이 갈증을 애원하며 보낸 서신이 되돌아오던 날, 귀가를 서두르던 저녁노을의 온몸에 붉은 반점이 돋았지만 공장굴뚝의 검은 혀들은 여전히 허공에서 군무를 즐긴다
보현사은행나무가 매미의 백일기도를 위해 제단을 쌓고 있다
2020년 『시와세계』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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