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
길상호
베어 묶어둔 빗줄기가
뒷마당에 다발로 쌓여 있었다
금낭화는
네 개의 유골단지를 쪼르르 들고
꽃가지가 휘었다
뒷산에서 잠시 내려온
아버지와 큰형과 둘째형과 똥개 메리는
대화를 나눌 입이 없고
서로를 무심히 통과하면서
물웅덩이마다 둥근 발자국을 그려놓았다
헛기침에도
꽃이 떨어져 깨질까봐,
그들의 빈 눈과 마주칠까봐,
나는 먹구름과 함께 발뒤꿈치를 들고
그 집을 나왔다
첫 봄비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
봄이 벌써 반 이상 떨어지고 없었다
출처-2021년 여름호 계간 『사이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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