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배터리 충전기/정계원

정계원 시인 2022. 6. 20. 21:39

배터리 충전기

 

정계원

 

 

한 여자가 푸른 불빛을 받으며 충전되고 있다

 

그녀는 눈비를 맞으며 빈 들판으로 서 있는

나에게 마테복음을 충전해 주었다

내 어깨 위에 우울한 초승달이 떠 있을 때

등뼈가 굵은 새벽을 보내왔다

천둥소리에 나의 영혼이 실종되었을 때

바흐의 교향곡을 들려주었다

내가 생의 공터에 앉아 허무의 게임을 하며

귀가를 포기할 때,

그녀는 얼음장보다 차가운 이성의 랍비로

와인에 취한 나를 깨웠다

무상으로 생존의 법칙을 나에게 충전시켜주던

그녀가 이젠, 마른 은행잎으로 산다

잎맥이 시들은 은행잎 곁에 내가 누웠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따스한 피로

가뭄의 빈혈에 시달리던 나에게 수혈해 주었다

그래서 내 메일함에 너를 저장하려고 해

정신의 무기를 나에게 충전한 그녀의 그림자,

지하계단을 따라 사라지고

정정한 느릅나무로 나는 새들을 품고 있다

 

 

2022년 동안여름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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