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화석에 가을여자가 피었다

정계원 시인 2023. 10. 17. 01:21

 

화석에 가을여자가 피었다

 

정계원

 

 

검은 돌에 내가 국화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지하 어둠이 수억 년 동안 내가 먹고 자란

저녁밥입니다

암반 밑에서 물방울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끔, 세상 밖 사람들의 신발 끄는 소리도

들려왔지요 그럴수록

이 어둠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죽순처럼

자랐습니다 그러나

돌에 핀 국화꽃이 되기 위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에 얼굴을 묻고

한평생 살았지요

두 눈이 실명되도록

돌에 핀 국화꽃이 되려고 했으나

신은 나의 업을 씻어주지 않았지요

어느 날,

돌 깨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고

사람들의 검은 손이 지하의 내 몸쪽으로

뻗어왔습니다

침묵의 어둠마저 더 채울 수 없는 이곳,

한 줄기의 낯선 빛이 내 몸에 닿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영혼이 시들지 않는 돌꽃으로 피었습니다

 

2023 계간지 『시산맥』 가을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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