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에 가을여자가 피었다
정계원
검은 돌에 내가 국화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지하 어둠이 수억 년 동안 내가 먹고 자란
저녁밥입니다
암반 밑에서 물방울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끔, 세상 밖 사람들의 신발 끄는 소리도
들려왔지요 그럴수록
이 어둠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죽순처럼
자랐습니다 그러나
돌에 핀 국화꽃이 되기 위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에 얼굴을 묻고
한평생 살았지요
두 눈이 실명되도록
돌에 핀 국화꽃이 되려고 했으나
신은 나의 업을 씻어주지 않았지요
어느 날,
돌 깨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고
사람들의 검은 손이 지하의 내 몸쪽으로
뻗어왔습니다
침묵의 어둠마저 더 채울 수 없는 이곳,
한 줄기의 낯선 빛이 내 몸에 닿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영혼이 시들지 않는 돌꽃으로 피었습니다
2023 계간지 『시산맥』 가을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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