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안내 표지판
정계원
주문진 장덕리 복사꽃마을 어귀에 그녀가 홀로 서 있다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나를 인도해 주려고,
무덤으로 갈 때까지 서 있다 폭설이 내려도 하굣길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온종일 매의 눈으로 먼 길을 떠나는 나의 사주를 살핀다 그때, 베링해의 바람을 피해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웃음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녀는 식사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는 줄로 알았으나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내 목덜미에 주름이 질 때 석양이 귀띔해 주었다 지금은 내가 두 아이의 안내표지판으로 서 있다 아니다 어머니가 서 있는 것이다
오래된 안내표지판 어깨에 붉은 녹물이 흘러 내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포효하며 온 세상을 적시고 있다
2023 가을호 『시와시학』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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