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층층나무단풍

정계원 시인 2023. 10. 17. 01:16

  층층나무단풍

 

 

  정계원

 

 

 

  이마에 붉은 머리띠를 두른 시위대들이

  핏빛 같은 함성을 지르며 마을로 내려오고 있다

 

  나는 매미가 울던 자리에서 그들을 맞이한다 춤을 추며 나에게로 내려오기까지 그들은 영혼을 태우며 8월을 통과했으리라 가끔, 우박이 그들의 가슴을 관통하는 상처와 가을비에 붉은 울음을 풀어내는 일도, 무서리에 잎맥이 체중계 바늘처럼 떠는 날도 있었으리라

 

  때론, 벌목공들의 톱날에 직립의 나무들이 쓰러지던 날엔, 산에 적막이 쌓이거나 가슴 조이며 밤새 몸을 뒤척이기도 했으리라 이젠 허공을 가로지르던 기러기떼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흰 눈이 거리에 인적을 지우고 있다 하지만,

 

  시간에 지친 붉은 그들,

  다시 초록을 꿈꾸며 12월의 강을 건너가고 있다

 

2023 가을호 『시와시학』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