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떼들이 뱀 눈알로 날아간다
북쪽으로 간다
청호동* 우체통에서 나와 묘향산 우체통으로 가지만 그
사연 받아 줄
사람, 있을까
50년대 초 화약 냄새 자욱한 어느 겨울, 새 떼들이 백두산에서 내려와 남쪽 밤하늘에 슬픈 보석으로 박혀 있다는 이야기와 일곱 살배기 새 떼가 어느새 은관銀冠을 쓰고 어린 염소 목청으로 "오마니 오마니" 부르다가 틀니 벗어 놓고 유셩이 되어 대기권 밖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갯배에 질긴 절망을 싣고 나르던 청호동 늙은 새 떼들도 "가가이 오라 더 가까이 오라"고 하면서(통일이여 통일이여) 녹슨 철책선 넘어 들국화 핀 본적지를 바라보며 비문이 없는 무덤의 주인이 된다는
늙은 새 떼들의 새 떼들이 가지고(사연을)
묘향산 우체국 앞마당에 풀어 놓지도 못한 채
우체통 앞에 모여 있던 늙은 새 떼들은 시간에 짓눌려
돌아올 수 없는 먼 초행길 열차표를 무더기로
티켓팅하고 있다
*청호동 : 속초시에 있는 실향민 난민촌
-출처: 심은섭 시집 《K 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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