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심은섭 시인/ 경칩의 여자들

정계원 시인 2026. 8. 29. 00:45

   경칩의 여자들

 

   심은섭

 

 

   개구리의 입이 떨어진다는 경칩이다

 

   입 떨어진 개구리들의 근황이 몹시 궁금하여 어떤 카페를 찾아갔다. 오늘따라 모든 테이블마다 만석이다 입 떨어진 개구리는 보이지 않고, 겨우내 겨울잠을 자다가 입 떨어진 분홍치마들만 둘러앉아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말을 한 가마니를 쏟아내는 분홍치마들,

 

   완전하게 입 떨어진 분홍치마들이 따발총 같은 언어의 칼로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고독한 사내들의 흉을 벗긴다 영문도 모르는 오후 3시도 끼어든다 입이 반쯤 떨어진 곁에 있던 분홍치마는 정회원이 되려고 현장상황을 체크한다

 

   이를 어쩌나, 분홍치마들의 언어 톱질로 시어머니의 사금파리 같은 목소리도 외상없이 두 동강이 난다 뒤꿈치를 들고 은행을 드나드는 짠돌이 시아버지가 분홍치마들의 사정없는 언어 난사로 찰과상을 입는다

 

   입간판의 목덜미로 달이 떠오르고, 분홍치마들이

   모두 돌아간 늦은 저녁

 

   카페 테이블 위에 입센 분홍치마들이 놓고 간 말들이 돌무덤처럼 쌓여 있다 그 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카페테이블이 사정없이 주저앉는다 유심히 테이블을 내려다보던 벽시계가 긴 한숨 쉬며 밤 10시를 가리킨다

 

 

 

-출처 : 2026년 계간지 시와 비평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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