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늙은 수박 - 정계원

정계원 시인 2021. 6. 13. 16:37

 

늙은 수박

 

정계원

 

 

뙤약볕 아래에서 줄무늬가 검붉게 태워질수록

세상은 온순해 진다

 

뜨거울수록 몸속의 함성은 더 붉어지리라

뜨거울수록 열반의 사리는 푸르러 지고

뜨거울수록 매미의 절규는 해탈을 꿈꾸리라

뜨거울수록 비닐하우스의 갈증이 사라지고

뜨거울수록 정신의 우물이 깊어지고

뜨거울수록 비구니의 저녁공양이 넉넉해지리라

뜨거울수록 붉은 앵두는 출가를 서두르고

뜨거울수록 푸른 진리는 영혼을 부활하게 하고

뜨거울수록 칼의 눈빛은 죽어가리라

뜨거울수록 생의 손금이 9부 능선을 오르고

뜨거울수록 우울했던 봉선화는 태양으로 피고

뜨거울수록 사막의 낙타발자국은 둥글어지리라

뜨거울수록 기타 1번 선의 울음은 명징해지고

뜨거울수록 말복의 죽음은 장렬하리라

 

그의 죽음이 달다

한 여자의 뒤안길엔 초록줄무늬 하나 없다

 

 

 

 

2019시사사1, 2월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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