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닭을 줄줄이 꿴 전기구이를 보면
전기고문이 생각난다.
털이 몽땅 뽑히고 다리가 잘려나간 채
목 마저 떨어져 나간 통닭을 보면
그때의 차디찬 기억이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어느날 검은 선글라스 사내들에 의해
눈 가리고 팔 꺾인 채 끌려간 캄캄한 지하실
무릎 꿇린 채
나의 내벽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신이여, 차라리 죽게 해주소서
죽음만이 살길이었던 참담한 기억들
창틀 안쪽에서 줄줄이 꿰여 빙빙 돌아가는
피 묻은 살덩이를 보면
나는 자꾸 어지럽고
구역질을 멈추지 못한다
저 닭도 결국 실토하고 말았을까
저 닭은 무엇을 실토했을까
나는 통닭을 줄줄이 꿴 전기구이를 보면
세상에서 제일인간답지 않은 것이
인간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본다
2022. 문예지 《창작21》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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