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나무베개
장롱 속에서 편백향을 뿜어내는 여인을 만났다
내가 불혹이 되었을 때,
사막의 모래알만큼 어둠의 물결이 치는 밤,
그를 안고 잠속으로 들어가면
악몽이 사라지고, 나의
영혼이 산사의 감로수처럼 정결해 진다
산전수전 겪은, 장롱 속에 편백베개를 꺼내어
물푸레나무처럼 살아온 그녀를 생각하며
안고 산다
시장좌판대에 생선을 놓고
천 원짜리 지폐와 싸우다 돌아오던 저녁,
그녀의 온몸에서 생선비린내가 풍긴다
아니다 편백향기였다
하얀 소복을 입은 눈이
노모의 영정사진을 안고 어깨를 들썩이며 내린다
바늘이 찌르듯이 아픈 나의 명치끝,
그날따라 편백나무향기는 어떤 날보다 더 짙다
내가 흔들리는 날엔
편백나무베개가 내 등뼈를 잡고 어둠을 떨어준다
2023년 문예지『시현실』 봄호, 91호
'나의 울음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다의 경전을 만나다 (0) | 2023.10.22 |
---|---|
정계원 시인/ 제3회 시산맥시문학상 본선 작품 및 심사평 (0) | 2023.07.07 |
정계원 시인/목탁조 (0) | 2023.05.18 |
제27회 영랑문학상 심사 경과/정계원 시인 (0) | 2022.07.16 |
붓다의 발자국/정계원 시인 (0) | 2022.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