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다로 떠나가던 날,
흰 눈이 내렸다
전나무들은 하얀 얼굴로 허리 굽혀 서 있었다
봄은 두꺼운 빙벽을 뚫고 어김없이 돌아왔다 제비도 약속을 한 것처럼 돌아와 처마 밑에 사글세를 얻어놓고 산다 황급히 밤 아홉시를 가리키고 자정을 통과한 시계바늘도 아침 아홉시로 되돌아왔다
지난여름에 피었던 접시꽃도 한 평 남짓한 우편취급소 주차장에 또 피어 있다
하지만 내가 스물두 살 되던 해, 정면을 바라보며 바다로 떠났던 강물은 천 개의 밤을 몰아내던 달이 떠올라도 돌아오지 않았다 월계관을 쓴 내가 회전의자에 앉던 날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불을 지피던 아궁이가 식어가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바다로 나가 강물의 신발문수를 찾아와
내 기억의 횃대에 걸어 두었다
-출처 『시와시학』 봄·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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