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푸꼬지기
정계원
그는 조선시대 양반집에 채소를 조달하는 농부다
새벽부터 양반들의 수라상을 위해
황소처럼 밭갈이한다
사대부의 입속을 황홀하게 만드는 일이
천직인 줄 알았다
궁궐의 고관대작들의 혀를 즐겁게 하는 일이
노비의 계명인 줄 알았다
채소의 온갖 잡귀를 몰아내고, 배추의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에
뻐꾹새 울음소리를 몇 음절을 끼워 놓기도 했다
한겨울에도 월동추꽃을 피우려고
노랑나비들에게도 간절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나
양반들의 호통은 밭고랑이 무너질 정도였다
불로초 같은 채소를 요구하며,
날마다 샛별보기 운동을 강요했다
그래도 입을 봉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른 새벽,
어깨에 괭이를 둘러메고
고정화된 천민의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른다
생의 뼈를 묻을, 아니 뼈를 묻고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할 들판으로 걸어간다
그의 등 뒤를 따르던 흰 그림자의 정신이
휘청거린다
-출처 : 2025년 『다층』 겨울 통권 108호 –젊은 시인 7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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