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발표 시

농푸꼬지기

정계원 시인 2026. 1. 6. 00:47

 

농푸꼬지기

 

 

정계원

 

 

 

그는 조선시대 양반집에 채소를 조달하는 농부다

새벽부터 양반들의 수라상을 위해

황소처럼 밭갈이한다

 

사대부의 입속을 황홀하게 만드는 일이

천직인 줄 알았다

궁궐의 고관대작들의 혀를 즐겁게 하는 일이

노비의 계명인 줄 알았다

 

채소의 온갖 잡귀를 몰아내고, 배추의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에

뻐꾹새 울음소리를 몇 음절을 끼워 놓기도 했다

한겨울에도 월동추꽃을 피우려고

노랑나비들에게도 간절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나

 

양반들의 호통은 밭고랑이 무너질 정도였다

불로초 같은 채소를 요구하며,

날마다 샛별보기 운동을 강요했다

그래도 입을 봉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른 새벽,

어깨에 괭이를 둘러메고

고정화된 천민의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른다

생의 뼈를 묻을, 아니 뼈를 묻고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할 들판으로 걸어간다

 

그의 등 뒤를 따르던 흰 그림자의 정신이

휘청거린다

 

 

 

 

-출처 : 2025다층겨울 통권 108젊은 시인 7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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