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추억탕 / 심은섭 시인

정계원 시인 2026. 7. 1. 01:08

  추어탕

 

  심은섭

 

  점심 식사를 하개 위해 탕(湯) 한 그릇을 주문했다

 

  치즈 맛은 전혀 없었다 미꾸라지 맛도 나지 않았다 감자송편 맛은 날 듯 말듯했다 어릴 적 몇 가락의 호박엿장수 가위소리가 뚝배기 국물 위에 수제비처럼 떠돌았다

 

  그 뚝배기 속엔  아침의 궁핍이 복사된 원형의 저녁 식탁이 있었고, 오랫동안 숙성된 유년의 기억과 쉰 살을 넘긴 시간의 양념이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악수를 나누었다

 

  탕의 간은 백색황금의 소금이 아니라 어머니의 짠 문물로 맞춰 있었다 젓가락으로 국물을 휘저었을 때 수척한 아버지의 얼굴과 인화가 불가한 기억 몇 장이 건져졌다

 

  유년의 시간을 숟가락으로 퍼 올렸다 그때 뚝배기위로 지나가는 바리깡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닮은 어떤 노인이 내가 신었던 검정 고무신의 발 문수를 재고 있었고,

 

  일곱 살의 식도로 내려가던 탕국물이 안부를 묻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제가 덜 된 아버지의 술 냄새로 탕을 끓인 흔적이 문신처럼 뚝배기에 남아 있었다 

 

  예전에 보았던 진달래꽃도 뚝배기 속에 짙게 피어 있었다 미각을 돋우는 우년의 뻐꾸기 울음가루를 뿌리고 휘저울 때 탕 속에 가라앉았던 새마을노래가 부표처럼 떠올랐다

 

  그 추억탕은 어머니의 모유만큼 달았다 감자밭에서 나의 꿈을 캐며 등 뒤에 피워낸 어머니의 소금꽃이 그 탕 속으로 들어와 싱거운 내 운명의 간을 맞춰주었다

 

  지금도 나는 그 뚝배기 맛의 인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처 「시와시학」2026년 여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