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느티나무의 귀향 /정계원

정계원 시인 2021. 8. 20. 11:06

2021년 문예지<시산맥> 가을호 

    느티나무의 귀향

 

 

    정계원

 

 

 

    느티나무가 물앵두를 찾아 도회지로 나갔습니다

 

    그 후, 3월은 나에게 빗살무늬 달빛 한 접시도 내려주지 않았고, 강낭콩은 으레 북쪽을 향해 꽃을 피웠습니다 마당 한가운데로 지나던 태양도 산기슭을 따라 서산을 넘었습니다 구절초는 꽃잎을 떨어뜨린 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소한의 눈빛만 문틈을 타고 들어왔습니다 쪽머리박꽃에게 시름의 대설주의보가 날마다 내렸습니다

 

   어린 꽃들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린 봄들은 빈 싸릿문을 열어 놓고 느티나무를 기다렸습니다 그가 대추나무꽃이 필 때면 가끔씩 툇마루에 앉아 머물다 돌아갔습니다 스무 살의 살구나무가 꽃가루를 날릴 때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어지러운 기억 뒤로 숨었지만 늙은 박꽃은 거친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누구도 손뼉을 칠 수 없는 낯선 나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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