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트롯
정계원
혼례를 치르던 열일곱 살 신부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다
어둠의 술독에서 농주가 발효되는 소슬한 아우성이고
섬을 둘러앉은 바다가 들려주는 난파선의 설움이다
외아들의 젖니가 돋아나 능소화의 주름이 펴지는 소리,
아프리카의 빈 집들이 처음으로 빵 굽는 저녁이다
빈 카페 주인의 한숨 소리가 이마 위로 몰려들고
반지하방의 어둠이 소주병 뚜껑을 여는 소리다
한낮 여우비가 난민판자촌의 갈증을 풀어주는 일이며
깊은 밤, 두견새가 아홉오라비를 부르다가 쓰러진 비가다
죽음 앞에서도 신을 원망하지 않는 동학의 북소리이고
하얀바람이 밤새도록 돌탑을 돌며 경전을 읽는 소리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내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다
2021년 『창작21 』 여름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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