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섭 시인/ 『물의 발톱』
달에서 지구의 플라스틱 병이 발견되었다 그 사실을 지구를 향해 황급히 터전했으나 인류가 벌집의 애벌레를 털어 먹었고, 피조개가 소유했던 갯벌을 갈아엎고 세운, 공장 굴뚝의 연기를 들이마신 나팔꽃 성대결절로 나팔을 불지 못해 새벽을 불러올 수 없다는 것이다 산속 벌목공들의 톱질 소리에 숲들이 원형탈모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산새들이 또 신문사에 제보했으나 입에 거품을 물고 쓴 기사 하나 없다 신문을 읽던 빗방울들이 치를 떨며 강가에 모여 완강한 쇠사슬의 스크랩을 짜고 황톳빛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그들의 발톱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 발톱으로 지상의 모든 길을 집어삼켰다 겁에 질린 어떤 나무는 겨울에 붉은 꽃을 피웠다 종족 번식을 위해 여름밤과 협상하던 달맞이꽃의 생식기마저 알뜰하게 거세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