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박주택 시인/히로시마를 기억함

정계원 시인 2022. 12. 20. 00:48

박주택

 

1

히로시마에 서서 보았다

시가지가 불타고 검은 구름이 솟아올랐다

죽어 나자빠지는 사람들 터져 나가는 유리창들

비척거리는 개 곁에 아우성이 들렸다

나는 폭탄이 터지는 히로시마에 있었다

비행기가 떠 올 때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 장소에 구속되는 또 하나의 감옥인 길

내가 전적으로 내가 되는 일은 지금도 살고 있는

이곳에서 기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 산다

이제 나는 공공의 장소가 되었다

 

2

잎사귀가 바람에 자동차 유리창으로 달려든다

겨울이  오기 전 남은 가을이 가고

오늘 지나온 거리를 읽는 벽은 하얗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과도 같이

집은 한 바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돈다

나는 지구에 있다

나는 위치를 자꾸 바꾸었지만

나 스스로가 장소였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했을 때

여기가 내가 되는 것처럼

히로시마는 불타고

전쟁을 모르는 소년이었던 나는

기억이 된 채로

누구나 부르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나는 히로시마에 산다

 

2022년 문예지<시와 시학>겨울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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