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택
1
히로시마에 서서 보았다
시가지가 불타고 검은 구름이 솟아올랐다
죽어 나자빠지는 사람들 터져 나가는 유리창들
비척거리는 개 곁에 아우성이 들렸다
나는 폭탄이 터지는 히로시마에 있었다
비행기가 떠 올 때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 장소에 구속되는 또 하나의 감옥인 길
내가 전적으로 내가 되는 일은 지금도 살고 있는
이곳에서 기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 산다
이제 나는 공공의 장소가 되었다
2
잎사귀가 바람에 자동차 유리창으로 달려든다
겨울이 오기 전 남은 가을이 가고
오늘 지나온 거리를 읽는 벽은 하얗다
외래어 표기 용례집과도 같이
집은 한 바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돈다
나는 지구에 있다
나는 위치를 자꾸 바꾸었지만
나 스스로가 장소였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했을 때
여기가 내가 되는 것처럼
히로시마는 불타고
전쟁을 모르는 소년이었던 나는
기억이 된 채로
누구나 부르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나는 히로시마에 산다
2022년 문예지<시와 시학>겨울호에서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윤학 시인/제비집 (0) | 2022.12.20 |
---|---|
박주택 시인/주거지 (0) | 2022.12.20 |
『만해 한용운 말꽃모음』 (0) | 2022.07.16 |
늙은 도둑의 오후/심은섭 시인 (0) | 2022.07.04 |
권우상/전기구이 (0) | 2022.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