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공화국
정계원
늦은 저녁9시,
만해마을에 이상의 피를 한 모금 받아먹은
정신질환자들이 모여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도 살 줄 모르는
노랭이 K 시인이 말하기를
“이강의 계보를 이어받은 이상한 시인들이
‘13의 아해’를 해체 중이다”라고 한다
멸치로 술안주를 하며 불안을 찾아 헤매던
이강이 ‘비대상 시론’을 열강하다가
큰 호흡을 한 번 하더니
“나는 시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의 저자인
박월 시인이 술에 취한 채,
소파에 앉아 언어로 연금술을 조탁하며
‘경칩의 여자들’을 쓰고 있다
컴퍼스로 수학 공식을 엎치락뒤치락하던
더벅머리 H 시인이 말하기를
“포물선을 그리는 ‘오렌지 기하학’의 시를
쓴다”고 한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대화에 나는
급히 아방가르드 공화국을 빠져나온다
-출처『시현실 』2026년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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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A에서 B로
정계원
동화책 속의 달에는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다
내 몸속엔 빈 절구통만 보인다
생성 AI는 똑똑한 바보 로봇이고
난 달개비꽃 하나 피우지 못한 여류시인이다
장미는 요염한 입술의 마녀이고
앉은뱅이호박꽃은 빈 주머니의 대명사이다
고층빌딩은 갈등을 신봉하는 극빈의 종교이고
월세방은 우애를 생산하는 향교이다
꽃피는 궁궐엔 수라상이 있지만
암자엔 채식하는 적요와 여승이 홀로 산다
오늘도 난,
A에서 B로 가려고 무딘 정신을 갈고 또 간다
-출처『시현실 』2026년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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