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문장이 늙은 바람의 문법을 숭배하며 짧은 평서문으로 자랐다 그 문법은 통사규칙을 어기지 말 것을 수시로 타전해 왔다 주어가 생략된 의식으로 불규칙한 담장 밖 풍문과 동행하지 말 것을 주문하며 문장의 늑골을 더욱 조였다
그럴수록 문장은 영혼의 목록에서 사라진 뼈다귀를 핥으며 살았다 때론 뒷골목 불나방의 비문을 새기는 석공이기도 했다 세월의 단락이 바뀌어도 손금의 한가운데로 정신이 컴컴한 헛간의 어휘와 총에 맞은 새의 머리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문법은 무명의 시간들을 따라 묘혈에 누웠다 슬픔의 독침이 문장의 혈관 속으로 퍼지고, 언어들은 일제히 경련을 일으켰다 굿당을 태워버린 무녀처럼 문장은 포효했다 문법이 없는 대궐보다 무법이 있는 옥탑방 아랫목이 더 따스했다
-출처: 시집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 상상인 시선.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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