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 - 고형렬

정계원 시인 2021. 6. 18. 12:36

새는 노출되어 있고 물고기는 숨어 있다

새는 불안하고 물고기는 은자이다

그래서 새는 흰 구름이 되어도 좋다고 했고

물고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세상이 끝난 뒤

물고기는 흰 구름이 될 수 없었다

새가 흰 구름이 될 때 물고기들은 새가 되었다

사람이 없는 어느 세상에서인가

흰 구름이 물이 될 때 물고기들은 새가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은

저 미래의 끝을 향해 노래하며 죽고 살며

흘러갔고

나 외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당도했다

불안한 곳에 살았던 새들이 구름이 될 때까지

흰 구름이 망각하고 물고기가 될 때까지

 

 

-출처: 시집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창비시선,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