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정계원 시인/ 508호 6인 병실

정계원 시인 2021. 9. 18. 15:21

2021년  문예지 『시와 시학 』 가을호 표지

 

  5086인 병실

 

  정계원

 

  축 늘어진 남성용 가죽벨트처럼 침상 위에 생의 광대들이 누워 있다

 

  비메이커 운동화를 신고 새벽 인력시장을 찾아 헤매던 1호 침상의 청호동 갯배는 일상의 속도를 잃어버린 채 링거액으로 몸을 적신다

 

  10두께의 어둠이 찾아와도 어화를 밝히며 만선으로 돌아오던 2호 침상의 주문진 등대, 밤새도록 허공에서 펄럭이는 깃발처럼 뒤척인다

 

  세월의 강을 건너다가 멈춰 선 늙은 시인을 닮은 3호 침상의 사천물개바위는 링거액이 꽂힌 누드와 거울처럼* 61의 고독을 마시며 18평 아파트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흥남부두를 떠나올 때 빈곤의 도시락에 고향의 흙냄새를 담아온 4호 침상의 아바이는 가위에 눌린 채 만성 향수병에 감염되어 고통을 다스리고 있다

 

  아버지의 얼굴에 독립선언을 외치던 5호 침상, 스무 살의 청춘은 회전문처럼 집으로 돌아가고파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한다

 

  6호 침상의 질통은 삼월의 하늘 아래 잔설 같다 등뼈가 훤히 내다보이는 디스크 통증은 저녁 불빛 아래에서 아우성이다

 

  동상이몽의 사람들,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심은섭, 누드와 거울

 

                                                2021년 문예지 『시와 시학』 가을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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