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시현실' 가을호< 이 계절의 시인>p229
젖은 말뚝
정계원
경포습지에 나의 DNA를 닮은 말뚝 하나가 수척하게 박혀 있다
DNA를 건넨 중년 능금의 한쪽 손목을 6·25가 앗아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가난이 나를 공단 노동자로 보내려고 했다 그때 하늘이 검은색으로 보였다
열두 살의 앳된 능금은 한 손에 중학교 합격통지서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엔 구로공단 구인 전단지를 들고 있다 칠순의 말뚝은 진학을 원했지만, 중년의 능금은 공단을 요구했다
앳된 단발머리 능금이 가출의 언덕에서 홀로 펄럭일 때, 칠순의 말뚝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성황당으로 달려가 빌며, 나의 영혼을 쓰다듬어 주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서산을 넘어가던 칠순의 말뚝은 앳된 능금에게 새벽을 데려다 주었다 지금은 온몸이 젖은 채 습지에 오~오래도록 박혀 있다
2021년, 『시현실』, 가을호 발표작
'나의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계원 시인/북극의 루루淚淚/야단법석 (0) | 2021.12.07 |
---|---|
정계원 시인/산 하나가 무너지고 (0) | 2021.09.27 |
정계원 시인/ 빈 항아리 (0) | 2021.09.27 |
정계원 시인/ 508호 6인 병실 (0) | 2021.09.18 |
정계원 시인/ 윈도 마네킹 (0) | 2021.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