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정계원 시인/산 하나가 무너지고

정계원 시인 2021. 9. 27. 22:39

2021년 '시현실' 가을호<이 계절의 시인>p229

 

산 하나가 무너지고

 

정계원

 

 

산모 산달 같은 산 하나가 또 무너지고 있다

 

몇 개의 산을 갉아먹은 포클레인의 몸집이

비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럴수록 세상은 먹빛 저녁으로 자라나고

메꽃 정강이의 상처가 덧나고 있다

수십 년 그 자리를 지켜온 물푸레나무들

밤마다 요란한 기계소리에 잠 못 들고 있다

금강초롱은 선친의 무덤을 빼앗긴 채

오늘도 식사를 전폐한 상태이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고라니는 이제 마지막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

둥근 지구가 정사각형의 골다공증을 앓는 지금,

비는 내리지 않고

사람들의 폐 속으로 황사가 떼지어 몰려온다

 

동사무소가 일찍 잠든 밤

금강소나무들의 비명이 지천으로 떠다닌다

 

 

 

2021, 시현실, 가을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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