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가 무너지고
정계원
산모 산달 같은 산 하나가 또 무너지고 있다
몇 개의 산을 갉아먹은 포클레인의 몸집이
비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럴수록 세상은 먹빛 저녁으로 자라나고
메꽃 정강이의 상처가 덧나고 있다
수십 년 그 자리를 지켜온 물푸레나무들
밤마다 요란한 기계소리에 잠 못 들고 있다
금강초롱은 선친의 무덤을 빼앗긴 채
오늘도 식사를 전폐한 상태이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고라니는 이제 마지막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
둥근 지구가 정사각형의 골다공증을 앓는 지금,
비는 내리지 않고
사람들의 폐 속으로 황사가 떼지어 몰려온다
동사무소가 일찍 잠든 밤
금강소나무들의 비명이 지천으로 떠다닌다
2021년, 『시현실』, 가을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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