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세체의 여자 허기에 찬 굴둑에 저녁연기를 피워 내려고 그녀는겨울나무처럼 서서 잠을 잤다 어느 날, 불현듯 얇아진 귀에 들려오는 풍문으로 사치와 부귀를 초서체로 써 보았지만풀잎처럼 흔들릴 뿐,붓끝에 젖은 먹물보다 봄은 더 어두워만 갔다반칙은 타락을 낳는다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다시 진지한 생의 획을 그어 보려고빈 들판으로 나가 새의 발자국을 주워 오거나사랑가를 부르다 죽은 매미들의 목록을 찾아 나섰다달빛이 수수밭에 벗어 놓고 간유행을 타지 않은 푸른 새벽을 데려오기도 했다폭설이 내리는 날에 예정된 상견례로궁핍과 정중한 악수를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삼색 볼펜으로 밤의 수염을 그리지는 않았다은자령에 뭉게구름이 걸어놓은 자유 한 벌이나보릿고개를 넘다 해산한 대추나무의 꽃잎 한 장도탁발하지 않았다어둠에 그을린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