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여인2
심은섭 시인
그는 태아의 역마살을 지우려고 정갈한 의식을 치르고 난 뒤, 궁궐 한 채를 짓기 시작했다 서른 살의 주춧돌 위에 잘 다듬은 행운목으로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은 늪에서 홀로 잘 익은 갈대로 엮고, 암반수로 반죽한 황토를 발랐다
사계절 부활하는 산맥과 싱싱한 새벽종소리가 떼 지어 몰려오도록 동창을 냈다 먼 길을 떠날 때 좌표로 삼을 북두칠성이 보이도록 지붕은 무명천으로 씌웠다 질긴 모성애로 담장을 치고 밤이 주도하는 집회를 막으려고 문설주에 외등도 달았다
사방을 살핀 뒤에 실눈의 산짐승들의 수상한 이동을 감시하려고 망루를 세웠다 상수리나무들의 그림자가 성문의 사타구리로 빠져나갈 때 그녀는 궁궐로 들어와 방에 가만히 누웠다 그때 만월의 자궁 속에서 어둠을 깨는 첫울음소리가 들려왔다
2021년 가을호 계간 《한국미소문학》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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