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영춘 시인/성 밖에서

정계원 시인 2022. 1. 3. 14:20

  성 밖에서

 

  이영춘

 

 

  성 밖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풀잎 같은 사람들,

  누가 부르는 이도 없고 가라는 사람도 없다

  기웃기웃 카프카의 k처럼 성문 밖에서 기웃거린다

 

  저 안에는 무수한 이름들과, 이름표를 단 사람들이 군주를

향해 몰려 있다 아니, 군주가 자신의 위력을 위해 명성을 위

해 불러들인 이름들이다 먼발치에서 불빛 바라보듯 성안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풀잎들이 빗물처럼 흔들린다

 

  아득한 저 하늘 끝 뭉게구름 한 점 둥둥 떠 흘러가듯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의 궁정 같은 성,

  그 성 밖에서

  풀잎들은 제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다 지쳐

  다시 풀잎으로 눕는다

 

 

시집 그 뼈가 아파서 울었다실천문학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