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밖에서
이영춘
성 밖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풀잎 같은 사람들,
누가 부르는 이도 없고 가라는 사람도 없다
기웃기웃 카프카의 k처럼 성문 밖에서 기웃거린다
저 안에는 무수한 이름들과, 이름표를 단 사람들이 군주를
향해 몰려 있다 아니, 군주가 자신의 위력을 위해 명성을 위
해 불러들인 이름들이다 먼발치에서 불빛 바라보듯 성안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풀잎들이 빗물처럼 흔들린다
아득한 저 하늘 끝 뭉게구름 한 점 둥둥 떠 흘러가듯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의 궁정 같은 성,
그 성 밖에서
풀잎들은 제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다 지쳐
다시 풀잎으로 눕는다
시집 『그 뼈가 아파서 울었다』 실천문학사, 2021.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은섭 시인/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 (0) | 2022.01.06 |
---|---|
이영춘 시인/바람과 외투 (0) | 2022.01.06 |
심은섭 시인/ 만삭의 여인2 (0) | 2021.12.16 |
허자경 시인/150㎖오렌지주스 (0) | 2021.12.07 |
최소연 시인/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는 뭐할까 (0) | 2021.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