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하지 않는 e메일
심은섭
달이 떠오르고
내 기억의 언덕엔 두 얼굴이 떠오른다
천상에 계신 아버지에게 명절 쇠시러 오시라고 e메일을 보냈다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조명이 휘황찬란한 천상나이트클럽에서 러브샷을 하거나 다방마담이 건네는 모닝커피를 마시며 한량한 시간을 보낼 거라고 의심했다
지난해 유월쯤, 천국행 열차표를 예약하고 대기하시던 어머니마저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집을 나가셨다 역시 그 흔한 문자 한통 없다 아버지를 찾다가 지친 어머니도 천상카바레에서 지르박을 추고 있을 거라는 풍문이 파다했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노부부가 천국에서 오랜만에 만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든, 공원벤치에 앉아 백년고독의 성을 허물고 계시든, 아니면 반지하 사글셋방을 얻어 신방을 차리시든, 한 줄의 e메일이라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저녁에
전화번호를 지우는 순간
시청에서 '미아' 접수 문자가 날아왔다
-출처, 2023년《동안》 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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