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밖에서 이영춘 성 밖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풀잎 같은 사람들, 누가 부르는 이도 없고 가라는 사람도 없다 기웃기웃 카프카의 k처럼 성문 밖에서 기웃거린다 저 안에는 무수한 이름들과, 이름표를 단 사람들이 군주를 향해 몰려 있다 아니, 군주가 자신의 위력을 위해 명성을 위 해 불러들인 이름들이다 먼발치에서 불빛 바라보듯 성안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풀잎들이 빗물처럼 흔들린다 아득한 저 하늘 끝 뭉게구름 한 점 둥둥 떠 흘러가듯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의 궁정 같은 성, 그 성 밖에서 풀잎들은 제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다 지쳐 다시 풀잎으로 눕는다 시집 『그 뼈가 아파서 울었다』 실천문학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