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뜨락의 노파 정계원 하얀 지붕 아래에 은관을 쓴 촌로가 산다 그녀는 정수리를 태우던 긴 여름을 통과하고 영하 40℃의 빙하기를 이기려고 설해목으로 서 있는 설송이다 밤낮으로 어린꽃들의 마른 영혼을 적셔주는 강물이다 하지만, 그의 생은 듣고도 듣지 못한, 보고도 보지 못한 바위이며,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시집살이다 그녀는 극빈의 허물을 벗으려고 밭고랑에 앉아 허드렛 울음이 된다 저녁마다 징으로 어둠을 깬다 어금니를 깨물며 살아온 팔순의 9부능선, 지금은 그녀가 붓다의 미소로 빚어낸 황금빛 만월이 되어, 요양원 뜰 아래에서 수의를 깁고 있다 2022년 『시현실』 봄호 발표작